2010학년 하계 세계교육기행· 해외봉사활동· 해외취재

전북대가 글로벌 시대의 주역 양성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해외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한 전북대 학생들의 열정과 패기가 뜨겁다.
하계방학 동안 국외 곳곳에서 자신이 직접 선정한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세계교육기행과 중국, 네팔, 인도 등에서 봉사활동은 물론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도 함께 알리는 해외봉사활동이 이뤄졌다. 전북대신문방송사에서도 일본 해외취재 및 문화탐방을 실시해 학내를 넘어 세계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에 참가해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서가는 건지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엮은이 밝힘>

세계교육기행, 중국 「x4」
세상의 중심, 중국의 중심‘상하이’

중국도 일본처럼 가깝지만 먼 나라에 속할까. 처음 세계교육기행 주제와 컨셉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탐방국가와 한국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었다. 주제와 탐방국가, 특이한 컨셉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엑스포가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2010 상하이 엑스포 탐방’ 이라는 세계교육기행의 전무후무한 테마가 정해졌다. 
중국인들의 첫 국제적인 공식 엑스포(박람회)인 ‘2010 상하이 엑스포’. 이것은 93년 ‘대전 엑스포’로 우리가 경험해보았던 것처럼 세계 만방에 자신의 국가를 알리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상하이는 성공적인 엑스포 개최로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규모적인 위용은 두 눈에 담기 버거울 정도였다. 상하이엑스포장은 휘황찬란한 엑스포의 건물들과 전시물, 조형물 등이 각 국의 문화 및 최첨단 과학과 어우러져 있었다.
자연과 지구를 생각하는 그린월드, 녹색산업을 바탕으로 한 더 나은 생활, 더 나은 내일의 그 모든 것들이 꿈틀대는 상하이 엑스포의 일일 관람객은 평균 40만 명을 가볍게 웃돈다. 영화 아마겟돈과 같은 영웅주의식 홍보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던 미국관, 우리나라 연예인급 여인들이 밭을 갈고 소를 몬다는 소문을 확인시켜준 미인들의 나라 우크라이나관 등 우리는 20여 개의 국가관과 10여 개의 도시관을 탐방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탐방이 상하이엑스포 현장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상하이 내에 있는 킨텍스 또는 코엑스처럼 상시 운영되는 상하이의 일반 박람회장을 탐방하는 것은 물론 관광산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띄는 숙박, 음식, 영어사용도, 국민의 의식수준, 교통, 기후에 따른 특징, 외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친절도, 공공시설 등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화장실을 제외한 공공시설들이 대체로 잘 정비 되어있었고, 끊임없이 이뤄지는 도시화로 인해 도시기반시설 역시 잘 마련돼 있었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상하이 시민들의 의식수분이었다. 그들의 의식수준은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 고승들의 수행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교통체제는 선진국 수준이었으나 인구와 차가 많은 탓에 교통질서는 엉망이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끝없는 줄과 밀치는 승객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리학교가 지원해주는 세계교육기행은 목마른 사슴에게 주는 물 한 모금이 아닌 우물을 찾아가게 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다. 세계교육기행은 책이 주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지혜에 목말라하는 대학생들의 오감 체험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었고 든든한 후원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청년실업을 한탄하며 틀에 박힌 자격증 공부나 철밥통 직장을 갖기 위한 공부보다 세계와 호흡하며 식견을 넓힐 수 있는 행운같은 기회이기도 했다. 더불어 더 많은 전대인들이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세계교육기행의 문을 두드리길 희망한다.
이문행┃무역·05


해외봉사, 네팔 「네팔포스」
내 안의 중심에서 네팔을 외치다

2010년 전북대학교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나에게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활동이었다. 대외 활동에 대한 나의 첫 시도였고, 봉사에 관한 의미를 찾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학교까지 대략 2시간 남짓 걸리는 산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수도 시설은 하나 뿐이었고 전기와 물이 끊기는 것은 다반사인 대략 난감한 오두막집이었다. 하지만 이번 해외봉사 기간 중에 최고의 장소를 뽑아 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오두막집을 선택할 것이다. 매일 학교와 숙소를 오가기 위해 땀 흘리며 등산했던 일, 둘 셋씩 모여 비 오는 날 흙탕물로 몸을 씻었던 일, 정전이 되어서 촛불을 켜놓고 이야기하던 일……. 당시는 힘겨움이었고 지금은 추억인 그 모든 일들이 오두막집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생활은 매우 힘들었지만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봉사활동 첫 날 네팔 학교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큰 환영식을 열어 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아이들의 환호와 미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들이 힘들게 이곳에 온 목적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우리를 따르는 아이들과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장난을 주고받으며 내가 이번 해외봉사를 통해서 찾고자 했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사실 하루 이틀 준비해 간 한글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과연 이 아이들과 내가 얼마 되지 않는 이 시간 동안에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네팔 아이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윷놀이나 수건돌리기와 같은 놀이문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우리 팀은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신체적으로 움직이고 접촉하고 서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도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고, 마지막 날은 학예회와 함께 학교에서 준비해 준 송별회가 있었다. 학예회 이후 진행된 송별회는 우리들이 준비해 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다 같이 네팔어와 우리나라말로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학예회 도중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학예회 때까지만 해도 이날의 봉사가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송별회 마지막에 노래를 다 함께 부르는 순간만큼은 가슴 찡한 무언가가 느껴졌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이 슬픔인지, 아쉬움인지, 해냈다는 안도감인지 그 순간 너무 많은 감정들이 교차해서 한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는 느낀 대로 행동하고, 아쉬운 마음을 다해 노래했다. 그렇게 네팔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아냈다.
18박 19일의 기나긴 여정을 끝나고 돌아온 한국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깨달았다. 해외봉사활동에서 얻은 무엇보다 중요한 결실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내 옆에 함께 하고 있는 ‘네팔포스’ 팀원들이라는 사실이다. 네팔에서 만난 아이들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한 우리 팀원들과 교수님이 나에게는 이 봉사 활동을 통해 찾은 최고의 보물이다.
강나리┃심리학과·08

해외취재, 일본 「전북대신문방송사」
선진국 일본열도를 읽다

3년 간 전북대신문사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학내외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들려주고자 노력했다. 이제 시야를 넓혀 학우들에게 더 넓은 세계 속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우리는 일본 해외 취재 길에 올랐다.
올해 해외 취재 주제는 ‘일본의 목조건축’이었다. 사전 취재는 기자로서의 필수이므로 전북대신문사 기자들은 각자 분야를 나눠 논문, 단행본, 인터넷 등으로 사전 취재를 실시했다. 해외 취재 첫날 일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불교 사찰들을 탐방해 목조건축들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날씨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다.  결국 어깨와 목 사이로 어설프게 우산을 받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허둥대고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격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 금박을 붙인 3층 누각 금각사, 세계최대 목조건물 동대사 등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 나라 등 일본의 불교문화 역사지가 모여있는 지역을 탐방하며 카메라에 담고 취재수첩에 적어나갔다. 동양인인 우리에게 불교문화는 친숙한 만큼 어쩌면 일본의 사찰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아 지루하거나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원기둥 하단의 뚫린 통로를 통과하면 장수를 한다, 돌을 발로 찬 다음 눈감고 맞은편 돌까지 정확히 도착하면 짝사랑이 이뤄진다 등 일본 각 사찰의 건물이나 장소에 역사적 배경을 부여하는 스토리텔링이 잘 돼있었다. 짝사랑을 이뤄보겠다며 두 눈은 감고 두 손은 합장한 상태로 2미터는 족히 되는 돌과 돌 사이를 비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직진했던 동료기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사실 해외취재는 일본의 목조건축이었지만 80년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일본곳곳의 모든 것이 나를 자극했다. 대도시 오사카 번화가의 8차선 도로에서는 자동차 크락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덕목이 무의식적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정책적으로 차를 소유한 개인은 주택 내에 주차공간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주택가 좁은 골목, 골목 보행자들의 보행권을 방해하는 불법주차 차량을 볼 수 없었다.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 또는 고베, 교토 등 주변 소도시 어느 곳을 가던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와 길에서 쓰레기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본의 이러한 면들은 나에게 온전한 선진국 대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시민의식도 뒷받침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올해 11월,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국가경쟁력과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국민들의 선진화 의식이 함양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매주 8페이지의 신문을 만드느라 고생하고 있는 전북대신문사 모든 기자들에게 ‘파이팅’하자고 전하고 싶다.   
전정희┃주거환경·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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