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케치 / 전남 곡성 기차마을
60년대 전라선 열차 정취 그대로 재현
섬진강 따라 열차 타고 자전거 하이킹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그래서 생각이 단조로워질 수 없다.”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기차의 매력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기차의 매력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기차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전남 곡성 기차마을이 있다.

꽃샘추위가 잠깐 다녀간 어느 날 따뜻함을 찾아 남쪽나라 곡성 기차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주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개나리와 매화꽃이 피어있는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봄을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곡성역에 다다랐다.

◇곡성 기차마을의 첫 모습
곡성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기차마을이 보인다. 1960년대 옛 곡성역을 그대로 재연해 놓아 그 이름 값을 제법 톡톡히 하고 있다. 주변엔 온통 기차로 가득하다. 마을의 집합실에 들어서자 마침 WBC 결승전 시합이 진행되고 있다. 서로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집합실에 모여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집합실을 나서 기차마을의 명물인 증기기관차를 타러 갔다. 요즘 기차와 달리 많이 덜컹거려 마치 비포장 도로에서 버스를 탄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열차 기관사는 늦게 도착하거나 9회 말 경기를 끝까지 관람하려는 손님들을 위해 2시 출발하는 열차를 10분 정도 늦게 출발해 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우리나라 9대 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 창 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증기 기관차 승무원이 섬진강의 유래와 호곡나루터 및 심청마을 등 주변 관광지에 대해 설명을 곁들인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시절, 왜구들이 강을 건널 때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나루터로 몰려들어 진을 치고 울부짖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꺼비 섬(蟾)자이고, 진은 나루 진(津)자를 써서 섬진강(蟾津江)이라고.

25분을 달린 증기 기관차는 섬진강 천문대 및 두가 현수교가 있는 가정역에서 정차했다. 섬진강 유역인 가정역에서는 강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하거나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섬진강 천문대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시원한 강바람과 들꽃이 살랑거리는 섬진강 도로 주변은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제격이다. 자전거는 가정역 주변 상가에서 3천 원만 내면 빌릴 수 있다. 자전거 타는 것에 싫증이 난다면 발 지압장에서 잠깐 쉬었다 가면 된다. 또 섬진강 천문대는 1시간마다 아름다운 별을 관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니 시간을 잘 맞춰 가는 센스가 필요하다. 아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온 김선태(서울·40)씨는 “섬진강이 가까이 있으니 매우 시원하고 자유로워진 기분이다”라며 “아이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 기차도 타고 강바람을 맞아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역에서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기차마을로 돌아오자 마침 마을에서 인기가 제일 좋다는 레일바이크의 자리가 났다. 실제 운영하던 전라선 철도를 이용해 만든 레일바이크는 철도공원의 연못과 풍차 등을 한 눈에 구경할 수 있다. 자전거도 아니고 기차도 아닌 생소한 탈것을 타고 1.6km의 구간을 도는 동안, 레일 위의 풍경과 레일바이크의 재미에 쏙 빠져버렸다.

◇1960년대를 재현해놓은 곡성 기차마을의 영화촬영소
레일바이크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우리의 눈물을 쏙 뺐던 원빈의 입영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입영열차는 전시용 증기 기관차로 내부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곡성의 특산물 전시장으로 꾸며져 있다. 곡성 기차마을은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어 기차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됐다. 그래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앉은자리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기차마을의 모든 것을 즐기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나룻배타기를 할 수 있는 호곡나루터와 민물고기 잡기, 소달구지를 탈 수 있는 두계 외갓집, 가정 녹색농촌체험마을과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압록유원지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기차마을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와 기차를 구경하고 이색기차를 즐길 수 있는 곳. 또 기차로 만든 조형물을 보는 동안, 온통 기차로 가득한 동화 속 마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일상에 지친 그대, 기차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싱그러운 봄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기차마을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기차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차를 이용해 지은 가정역 주변의 팬션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