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삶에 깊숙이 뿌리박은 예술
10년대 독립군가·80년대 건전 가요
노래는 머리가 아닌 마음과 입술로

노래는 대중들의 삶에 가장 깊숙이 뿌리박은 예술이다. 누구나 자유롭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서 만날 수 있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 해 온 우리의 OO”이라는 이벤트 문구의 빈자리는 예외 없이 노래의 차지다. 어려웠던 지난 시절, 영화도 미술도 연극도 모두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문해 주었었지만 지금도 그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때 그 친구는 누가 뭐래도 노래뿐. 어느 날 느닷없이 입술에 새겨진 소중한 노래는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 하게 된다.
좀 더 거창한 이야기를 하자면, 부처님을 찾을 때도 예수님을 찾을 때도 알라신을 찾을 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저마다의 신을 부르고 만난다. 송도삼절이라 칭송하는 황진이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미국 남부에서 목화밭을 일구던 할아버지, 강원도 험한 산 속에서 나물을 캐던 누이의 모진 시간 역시 노래를 통해 기억되어 왔다. 노동, 유희, 종교적 활동 뿐 아니라 우리는 배움의 순간에도 노래의 힘을 빌곤 했다.

렁탸게 토하난 괴뎍소리에

남대문을 등디고 떠나나가서

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갓흐니

날개 가딘 새라도 못따르겟네.
<경부철도노래>, 1908, 최남선

이 7.5조의 시가를 당시 사람들은 동요 <나가자 동무들아>의 선율에 맞추어 노래로 부르며 익혔다. 그렇게 사람들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 왔으니 가끔씩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려는 음흉한 자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하는 것이 노래의 운명이기도 했다. 민중의 수난과 함께 해 온 만큼 스스로의 수난사도 적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독재정권이 민중들을 착취하고 기만해 온 짧지 않은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노래는 일제에 저항하는 동시에 일제를 찬양했고 독재정권에 맞서는 동시에 독재정권의 나팔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군가와 같은 노래가 만들어지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노래를 장롱 깊숙이 꼭꼭 감추어두고 행여 알려질세라 노심초사하며 살기도 했다. 일제를 찬양하거나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들이었기 때문이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독립군가>, 1910년대, 외국곡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군가로 80년대 대학가에서도 널리 애창되었고, 2005년에는 크라잉넛의 리메이크로 더욱 대중화되었다. 이처럼, 억압적인 권력 하에서는 언제나 저항하는 노래와 찬양하는 노래가 함께 만들어진다. 저항하는 사람들과 굴종하는 사람들이 늘 공존하기 때문이다. 억압의 강도가 높아지면 그에 발맞추어 양 극단의 선명한 노래들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저항하는 자들은 더욱 절실하게 희망을 가슴에 품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기만적인 노래를 필요로 한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항하는 자들의 노래를 아예 사람들로부터 빼앗아버리려고도 하는데 이를 통해 체제에 대한 저항가와 찬양가는 금지곡과 건전가요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 대한민국>, 1983, 정수라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1990, 정태춘

 <아, 대한민국>은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널리 강요, 전파되었던 노래. 이른바  ‘건전가요’의 대표곡이다. 이후 <아, 대한민국>을 풍자하여 만든 노래로 정태춘의 이 노래는 방송이 허락되지 않았다.
권력에 의해 저항하는 이들의 노래는 금지곡으로 핍박받고 굴종하는 자들의 노래가 건전가요로 대접받는 일은 우리 현대사의 일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언제나 금지곡을 건전가요보다 더 소중하게 마음속에 간직해왔다는 사실이다. 건전가요는 방송이나 레코드를 통해 매일 흘러나오고 강제로 제창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권력과 함께 동시에 사라져갔다. 반면 금지곡은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암암리에 애창되다가도 때가 되면 광장으로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입술에 담겨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곤 했다. 우리들 서로에 대한 어떤 믿음과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었고 억압에서 벗어나 서로의 마음을 공공연히 위로하고 나누는 데에 노래보다 더 좋은 무엇은 없었던 때문일 것이다.
한편, 비뚤어진 마음을 먹게 되면, 사람들이 이처럼 사랑하는 노래를 못된 목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성취될 수도 있고 세상을 호도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절대 안 되는 것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노래 그 자체를 빼앗는 것이다. 노래는 머리가 아닌 마음과 입술에 새겨져 있는 것이어서 그렇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노래를 빼앗고도 사람과 세상을 다 얻은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올해 광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앗아 가려 했던 현 정부의 독선은 비난 이전에 실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김병오┃전주대학교 객원교수 겸 문화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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