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올해 설 이후 한 번도 고향집에 가지 않았다. 신문사 작업이 주말까지 계속되기도 했고, 남는 시간에는 주중에 쌓인 피로를 푸느라 잠에 취해있거나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을 만나 놀기에 바빴다. 그렇게 ‘집에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했던 것이 세 달을 넘겼다.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오랫동안 집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부모님에게 걸었던 전화 따위로 죄송한 마음을 덜었다.
그러던 중, 결국 며칠 전 엄마가 쌀, 김치부터 시작해 내가 좋아하는 삼계탕까지 두 손 가득 싸들고 첫 차로 전주에 내려오셨다. 딸 보려고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서 버스에 올랐다는 엄마. 엄마는 오자마자 나의 더러운 원룸을 청소하고 또 청소하다 나의 수업시간에 맞춰 점심도 안 드시고 괜찮다며 다시 고향집으로 향하셨다. 딸 공부에 방해될까 서둘러 돌아가는 엄마를 보니 너무 죄송하고 안타까워 코끝이 찡해졌다.
벌써 20대가 되어버렸다. 사회는 우리 20대에게 ‘88만원 세대’이라는 족쇄를 채웠다. 정말이지 버거운 이름이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라는 타이틀은 어쩌면 부모님이 더 버거울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등에는 커버린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모자라, ‘자식의 취업걱정’ 이라는 무게까지 얹게됐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힘든 만큼, 부모님들도 당신들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녹록치 않을 텐데 자식 먼저 생각하며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분들이 우리들의 부모님이다. 자신들에게 짐을 지우는 고슴도치 자식이라도 기쁘게 감싸 안는 것이 우리네 부모님일 것이다.
그러나 난 어떤가. 솔직히 부모님보다 취업 먼저, 내 꿈 먼저, 시험을 먼저 생각하곤 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내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럴수록 가족과 함께 보냈던 세상은 삶에서 점차 멀어졌다. 오로지 내 인생만 중해 나의 삶만 살았다. 참 못난 자식이다.
혹자도 나처럼 못난 자식이기만 한 건 아닌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우릴 위해 한없이 희생해도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작 애인 선물 또는 친구 밥 한 끼는 사줘도 부모님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못 지어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정의 달이다. 부모님을 두고 집 떠나 온 나와 같은 그대들이여. 우리 함께 이번 주말 카네이션을 들고 고향집으로 가자.
장예슬┃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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