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는 찬영이가 있다. 찬영이는 어찌나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지 각종 활동에 쉴 틈 없이 스케줄이 빼곡하다. 그래도 찬영이는 모든 모임에 최선을 다한다. 대회를 해도 항상 주도해 팀을 만들고 토론을 해도 항상 목소리 높여 자기 의견을 펼친다. 바쁜 와중에 학점을 위한 시간도 할애하고 친목을 위한 뒤풀이도 빠지지 않고 나간다. 아마 찬영이처럼 열심히 사는 대학생도 또 없을 것이다.

신입생 미영과 현지는 찬영이와 같은 동아리와 소모임에 속해있다. 찬영이는 그 안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도맡고 있었다. 미영과 현지는 그런 찬영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현재 12월, 미영과 현지는 찬영이 소름끼친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지는 이야기한다. “아는 것도 많고, 일처리도 빨라서 아주 좋겠어요. 근데 나이도 많아서 좋겠네요. 하는 게 많으니 이야깃거리도 많아 좋을 거예요. 덕분에 입을 함부로 놀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할 겨를 없는 것도 아주 부러워요.”

찬영은 말한다. “그런 정신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현지 걘 대회를 참가하겠다면서 아무것도 해오지를 않았다고요. 심지어 미영이는 갑자기 못하겠다고 빠졌어요. 힘들어 하는 거 같아서 더 신경 써줬는데요. 회의 자리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데, 뭘 어떻게 해요? 그래놓고 뒤에서 제 욕을 했다는데 참나, 욕할 사람은 따로 있죠.”

미영도 조심스레 입을 연다. “찬영오빠가 사람을 잘 챙기기는 하는데요, 솔직히 안 원하거든요. 찬영오빠는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채찍질 하는 스타일이여서요. 오빠 보면 일중독인가 싶기까지 한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거든요.”

찬영과 미영, 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이 각자 달라서 서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서로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뭘 어떻게 해요?’ 찬영의 권위 아래에서 현지와 미영이 얼마나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표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할 겨를 없는 것도 부러워요.’ 찬영의 분주함을 오로지 찬영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찬영 오빠가 사람을 잘 챙기기는 하는데요, 솔직히 안 원하거든요.’ 말도 없이 다른 사람의 호의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람이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합리적인 판단인 것 마냥 떠벌리고 다니면서 우리는 으른, 꼰대가 돼간다. 나이가 많아야만 꼰대가 아니다. 자신의 입장 외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꼰대가 될 수 있다.

노은선|정치외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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